12월, 2015의 게시물 표시

이병률,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이병률 종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한때는 돌을 잘 다루는 이 되고도 싶었는데 이젠 다 집어치우고 아주 넓은 등 하나를 가져 달(月)도 착란도 내려놓고 기대봤으면 아주 넓고 얼얼한 등이 있어 가끔은 사원처럼 뒤돌아봐도 되겠다 싶은데 오래 울 양으로 강물 다 흘려보내고 손도 바람에 씻어 말리고 내 넓은 등짝에 얼굴을 묻고 한 삼백년 등이 다 닳도록 얼굴을 묻고 종이를 잊고 나무도 돌도 잊고 아주 넓은 등에 기대 한 사람에게 스민 전부를 잊을 수 있으면 = 착란(錯亂). 그건 1025일간의 착란이었다. 내가 너무 어리고, 미숙하고, 손쉽고, 순진해서, 그래서 열병처럼 겪은 착란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왔다. 모든 지난 날의 실체와, 낯설기만 한 그의 정체와, 그 사이에서 애써 위안하며 외면해온 나의 질병이 까발려졌다. 갑작스러웠으나, 차라리 선물이었다. 청춘의 낭비는 이로써 충분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무의미하게 앓지도, 잃지도, 울지도 않을 것이다.

김사인, 화양연화

화양연화(花樣年華)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 못내 영원하지 못하고 져버린 것들에 대한 꾸밈없는 작별인사.

2015년 11월 24일 월요일 10개 일간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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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4일 월요일 10개 일간지 1면 -11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경향신문: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국민일보: 민주화의 巨山 떠나다   ▼동아일보: 닭의 모가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문화일보: '미완의 改革과 통합'  숙제 남기고 가다 ▼서울신문: 민주화 '巨山' 떠나다 ▼세계일보: 민주화 큰 별 지다 ▼조선일보: 大道無門의 승부사 '巨山' 잠들다   ▼중앙일보: "통합과 화합" 승부사 YS 마지막 메시지   ▼한겨레: 민주화 큰산 떠나다 ▼한국일보: 민주화의 긴 여정 맺다 = 사진은 조선 동아가 제일 힘있는 느낌. 제목까지 더하면 조선에 한표.  전반적으로 거산에 집착한 느낌

셀마(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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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Selma, 2014 드라마 영국, 미국 128분 2015.07.23 개봉 에바 두버네이 데이빗 오예로워(마틴 루터 킹), 카르멘 에조고(코레타 스콧 킹) We negotiate, we demonstrate, we resist. Our lives are not fully lived if we're not wiling to die for those we love,  for what we believe. We're not asking, we're demanding! Give us the vote! There is no Negro problem.  There is no Southern problem. There is no Northern problem.  There is only an American problem. Glory hallelujah! Glory hallelujah! Glory hallelujah! = 투쟁과 행진, 그리고 승리에 대한 기록.  마틴 루터 킹 한 사람이 이뤄낸 것이 아닌, 용기있는 다수가 한땀한땀 일궈낸 자유의 힘에 박수를 보낸다. 역사는 늘 그렇게 진보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가 거리로 나서고 행진하고, 앞줄에서 당당히 피를 흘리는 이유다. 실제 행진 장면을 보여주는 흑백 화면과 'Glory'의 선율, 마지막 연설 장면에서 데이빗 오예로워가 보여준 열연을 잊지 못할 것이다.  

러브레터(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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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 Love Letter, 1995 드라마, 멜로/로맨스 일본 117분 2013.11.28 재개봉, 2013.02.14 재개봉, 1999.11.20 개봉 이와이 슌지 나카야마 미호(후지이 이츠키/와타나베 히로코) 그는 나의 연인이었습니다. 당신의 추억을 저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래쉬!   너 바보니?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요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 도서카드에 쓴 이름이 정말 그의 이름일까요?  이 추억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쑥쓰러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하겠습니다. = 겨울만 되면 첫눈처럼 떠오르는 영화. 오랜만에 봤다. 입원한 마지막 날 밤 침대에서 숨죽이고서. 히로코의 사랑 얘기 같지만 결국엔 히로코를 매개로 이츠키가 첫사랑 그녀 이츠키에게 보내는 연서 같은 영화다. 두 여자는 편지를 통해 이츠키를 추억하면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성장을 겪는다. 이츠키는 미처 알지 못했던 첫사랑을 되찾고 히로코는 못내 보내지 못했던 숨진 약혼자를 비로소 놓아버릴 수 있게 된다. 독서카드 뒷면을 받아든 이츠키의 표정과 바람, 아마도 남풍에 흔들리는 독서카드 속 앳된 이츠키의 초상은 영영 잊지 못할 장면이다. 죽은 소년으로부터 뒤늦게 도착한 러브레터는 수십년을 거슬러 소녀를 그 시절로 데려다놓았다. 아마 오래도록 때아닌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을 테다. 설원 속에서 빨간 스웨터를 입은 히로코가 무너지듯 오열하며 안부를 묻던 장면 역시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홀로 남겨진 여자는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냐고 한참을 속에서 곪았을 감정을 흰 눈밭에 안부로 수놓았다. 그제서야 새 사랑을 찾아 돌아서는 발걸음의 무게를 감히 가늠하기 힘들다. 두 사람의 감정이 모두 나의 것처럼 가깝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첫사랑에 관한 낭만

정의를 부탁해, 권석천

정의를 부탁해  권석천의 시각 저자   권석천 | 동아시아   | 2015.11.03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계층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었던 그때, 그 분열의 감수성 말이다. 보수진보의 깃발이 구심력을 잃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희망은 그렇게 작은 분열들에서 싹틀지 모른다. p.49, <성공담이 듣고 싶은 당신께> 인간은 말(언어)의 포로다. 세상에 나와 배우고 익힌 말로 생각하고, 대화하고, 글을 쓴다. 그래서 말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권력은 총구(銃口)가 아닌 말에서 나온다. p.73, <'공권력'을 민영화하라> 법을 배운 자들이 저러할진대 누구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할 건가. 법도 끝까지 우기면 되는 건가. 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그런 수군거림이 무섭고 두렵다. p.163, <국정원 청문회의 검투사들> 정권 전반기,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순한 양'이었다가 후반기에는 죽어가는 권력 앞에서 '호랑이의 이빨'을 드러내곤 했다. 그 과정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일그러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것이 과연 개개인의 출세욕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p.212, <'펀치' 검사들이 사는 법> 진실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한 사회가 진실을 끝까지 가리지 않고 '편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판사는 여론에 휘둘려서도, 재판 원칙 뒤에 숨어서도 안 된다. 끊임없이 불편해야 하고,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판사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이유다.  p.257, <낙지 살인, 그 편한 진실> 민주화와 정의를 향한 여정은 나의 오른팔을 없앤 자에게 왼손을 내미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p.383, <원칙이 우릴 삼킬지라도> = 뭇 주니어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클라이머즈 하이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 | 역자   박정임 | 북폴리오   | 2013.07.03 원제 クライマ―ズ.ハイ 이 간이침대는 젊은 사건기자들에게 쉼터와 같은 것이다. 밤에는 기사를 쓰고 아침이면 다시 달려나가는, 그 사이에 날개를 쉬는. 그렇지만 뇌는 잠들지 않고 야망으로 채색된 짧은 꿈을 꾼다. p.72-73 사고의 크기에 들떠 있다. 모리야의 말은 편집국의 공기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으며 '축제 기분'도 그렇게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모두가 '날아 들어온 사고'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고 '세계 최대'를 자기 분발의 밑거름으로 이용해 수면 시간을 줄여온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 p.146 "국가니, 세계니 대상이 커진다고 해도 기자가 하는 일은 모두 마찬가지야. 부지런히 조사하고 열심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뿐이야. 커다란 대상을 상대로 기사 거리를 얻으면 큰 뉴스가 되지. 그렇지만 큰 일을 하는 건 아니야. 보잘것없는 상대로부터 보잘것없는 기사를 얻어내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야. 기자가 하는 일은 모두." p.213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도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람이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p.429-430 = 우리 언론과 생태계가 너무 닮아 있어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 시스템을 가져다가 만든 뼈대 위에서 자라난 게 우리 언론이라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다. 특히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 재난을 놓고 벌어지는 편집국 안의 이모저모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래서 부끄럽다. 내심 해왔던 생각들이나, 도처에서 벌어졌을 갈등들이 픽션인양 적혀있지만 사실 잔인한 논픽션이라는 거. 작가의 전작인 64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다만 64

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마음의 푸른상흔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 역자   권지현 | 소담출판사   | 2014.11.03 나는 지금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주 그럴듯한 이유로 나를 매료시켰던 삶이 가르쳐준 모순, 권태, 왜곡된 얼굴이다. ... 두려움은 아름답지 않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두려움을 몰랐는데. 이게 전부다. 하지만 그 '전부'가 끔찍하다. p.9~11 진심에서 우러나오기도 하고 무자비한 그로테스크함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그럴듯한 논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이고 모두 같은 신을 섬긴다. 그들이 부인하고자 하는 그 신은 단 하나, 바로 시간이다. 그러나 누가 프루스트를 읽는가? p.12 사실 내가 섬기는 유일한 우상, 유일한 신은 시간이다. 오직 시간만이 나에게 심오한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p.42 작가의 운명이란 이상한 것이다. 작가는 고삐를 바짝 쥐고 조화로운 걸음걸이에 허리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바람에 갈기를 흩날리며 문법, 통사론, 또는 게으림-이 최후의 거대한 울타리-같은 우스꽝스러운 도랑을 깡충깡충 뛰어넘는 미친 말을 타야 한다. 사람들이 작가라는 직업을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부를 때면, 손을 때려줄 상사도 없고, 성적을 매길 사람이 아무도, 정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자유란 근본적으로 우리가 훔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또 자유를 빼앗을 수 잇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도둑맞은 도둑, 물세례받은 살수원,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p.79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잘 나눠 가진 것은 상식이 아니라 감정이다. ... 상상력은 드물며,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또 사람들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다. 가진 사람도 가끔 있지만 절대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상상력이다. p.88 = 보물 같은 작가.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프랑스어 공부

리퀴드 러브,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사랑하지 않을 권리, 현대의 우울과 고통의 원천에 대하여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 역자   권태우 ,  조형준 | 새물결   | 2013.04.15 원제 Liquid love '개체화'가 만연한 우리 세계에서 관계들은 혼란스런 축복이다. 즉 단꿈과 악몽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언제 정반대의 것으로 뒤바뀔지 알 수 없다. 이 두 아바타는 대부분의 시간에서 동거한다-상이한 의식 수준에서이긴 하지만. 그리하여 모든 것이 유동적인 현대에서는 삶의 모든 것이 양면성을 띤다. p.19 사랑은 이미 만들어진, 완벽하고 완성된 것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이 생성되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에서 의미를 찾는다. 사랑은 초월성에 가깝다. 그것은 창조 욕구의 또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창조 행위가 과연 그것이 무엇으로 끝날지를 결코 확신하지 못하듯이, 사랑 역시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한 운명에 모든 인간의 조건 중 가장 숭고한 것에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의미하며, 두려움은 기쁨과 뒤섞여 더이상 구성요소들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합금이 된다. 그러한 운명에 문을 열어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존재 속으로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의 동반자인 타자 속에 구현되어 있는 저 자유를 말이다. p.40~41 사방으로 내달릴수 있는 길들의 소용돌이인 네트워크(network)와 네트(net)를 혼동하지 마라. 내부에서는 마치 새장처럼 느껴지는 저 기만적 도구를 말이다. p.149 장소들 사이의 차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신체적으로도 가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계속해서 지워지고 이제는 거의 무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상들의 우주 속에서 오직 당신만이 정지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연장된 것들, 즉 당신과 접속 중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바로 당신 덕분에! 당신 덕분에!). 접속에 의해 연결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코타로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코타로 장편소설 저자   이사카 코타로 | 역자   김소영 | 웅진지식하우스   | 2015.06.08 원제 殘り全部バケ-ション 그 구경꾼들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은 거리마다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인간들은 뭘까. 안전지대에서 자신의 울분을 풀기 위해 한 다리 끼워 넣은 것뿐이지 않은가. ... "나도 그렇게 할까, 남은 날은 전부 휴가." 고민끝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꿈 깨." p.41 문제아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문제'아가 있으면 '대답'아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오카다군이 문제를 내면 다른 누군가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발상이나 떠오른 정도다. p.154 "다 그런 거야."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 '다 그런 거'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종종, 그 영화를 떠올렸다.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은 대사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찌. 나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었어." 그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열 살이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p.204 = 제목에 내 소망을 담아서 골랐던 책이다. 일본스러운 스토리텔링 특유의 엉뚱함과 톡톡 튀는 진중함이 돋보였다.  슬프면서도 따듯한 이야기. 이따금씩 악이 이뤄지지만 악인은 하나 없는 이야기.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음식의 언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저자  댄 주래프스키 | 역자  김병화 | 어크로스  | 2015.03.25 원제 The language of food 여러 민족이 문화적 보물이기나 한 것처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요리들의 유래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 p.98 "부자는 당신이나 나와 다르다"고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포테이토칩 광고업자들은 역사가 에리카 피터스의 격언을 되풀이하면서 부자는 당신과 나와 다르기를 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이 먹는 것은 "그들이 어떤 조냊인지 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반영한다"고 말이다. p.220 디저트는 그저 감각적인 즐거움 이상의 것이다(레스토랑 리뷰를 쓸 때 디저트 때문에 더 높은 평점을 주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것모습 뒤에 숨어있는 음식의 언어, 한 입 한 입 먹는 모든 음식의 바탕에 깔려 있는 암묵적인 문화구조를 반영한다. p.343 = 스탠퍼드 대학 교양 강의 '음식의 언어'를 책으로 펴낸 내용이다. 읽고 있노라면 식탁 앞에서 세계여행 하는 기분이 든다. 대학 때 배운 언어학 강의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웠고, 입맛은 예상보다 보편적이다. 각국 식문화부터 메뉴에 대한 이해, 리뷰의 심리학, 음식 이름의 언어학까지 총 망라하는 흥미 진진한 책이었다. 강의로 듣는 게 시청각적으로 더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여행 가면 먹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굳혀준 책이다. 얼른 다음 먹방 여행 떠나야 하는데...

차이나타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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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Coinlocker Girl, 2014 한준희 김혜수 (엄마),  김고은 (일영),  엄태구 (우곤) 누구야? 我孩子(워 하이즈). 엄마도, 엄마가 있어요? 넌 엄마 없니? 걔가 왜 좋았니? 그냥 친절해서요. 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결정은 한 번이고 그게 우리 방식이야.  끔찍할 땐 웃는게 차라리 편해. 죽지마, 죽을때까지. 이제부터는 니가 결정해. = 느와르 영화의 성별 뒤집기. 제 아이에게 더 나은 인생을 물려주지 못하고 딱 그만큼의 삶을 물려줄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운명은 얄궂다. 아이는 그렇게 다시 또 하나의 '엄마'가 됐다. 기대에 비해서는 만듦새가 좀 떨어졌지만 그런대로 볼만했다. 이 영화는 김고은이 마지막으로 연기를 '잘 한' 영화이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때만해도 김혜수에 밀리지 않는 포스였다며 기대가 컸는데 지금 왜 이렇게 됐는지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굴러가는 그 세계를 성실하게 담아낸 영화다. 좀 더 성실했더라면 설령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 해도 인간 보편의 감정에 기대 보다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일영이와 그 남자애 사이의 감정선 사이에 디테일을 좀 더 채워줬더라면 한결 나았을 거다. 아쉬움이 남는다.

검은 사제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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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 장재현 김윤석 (김신부),  강동원 (최부제), 박소담(영신) 모든 악과 악으로부터 오는 협박으로부터 당신의 모성을 구하시며,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소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신을 믿기 때문이지. 네 잘못이 아니야. 동생이 더 작아서 그런 거야.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에게는 덤비지 않아.  그리고 악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우릴 절망시키지. 너희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허나,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인간의 빛나는 지성과 이성으로.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떼 가운데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에제키엘서 2장 6절 (에스겔 2장 6절) 아가토 예 여기 있습니다. 신부님 저 괜찮아요.. 제가 꼭 붙잡고 있을게요 니가 다 했다 영신아. = 비주류 장르는 예상을 깨고 단숨에 흥행가도에 올라섰다.  검은사제들은 강동원이라는 스타파워가 어디까지 힘을 뻗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영화였다. 너도나도  한국에서 엑소시즘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로 단 하나, 강동원을 꼽았다. 강동원은 굳이 분류하자면 비주얼 탓에 연기력이 제 빛을 보지 못하는 배우다. 연기력이 탄탄한 미남 배우가 실험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게다가 다작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한국 영화에 축복이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아도 수단을 차려입은 강동원이 아기돼지를 목줄에 매고 명동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나, 그 옷자락을 휘날리며 명동을 내달리는 모습, 장엄한 연기 속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