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새벽에 들은 노래 3

새벽에 들은 노래 3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

밤마다 뜬눈으로 피흘리는 마음 바닥에는 어떤 아픔이 있는 걸까. 
덤덤한듯 절제된듯 지르는 비명같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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