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애니웨이(2012)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2





자비에 돌란





멜비 푸포(로렌스 아리아), 쉬잔느 클레먼트(프레드 비레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넌 싫어한거네.
내 몸만 사랑했어?


하늘 아래 한계는 없는 거야.


반항이 아니에요. 혁명이죠.



건강을 지킬 것, 위험을 피할 것, 과거를 잊고 희망을 거질 것. 너의 이름에 맹세해.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우리 사랑은 안전하지 않았지만 멍청하지도 않았어.



남편 선물로 가발을 사 봤어? 당신이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그녀를 A.Z. 라고 불러요. 모든게 그녀로부터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이죠.


 

로렌스, 넌 내 삶과, 마을과, 거리의 국경을 넘어왔구나. 이제 우리집 대문만이 남았네. 
날 어디서 찾을지는 알고 있겠지.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아들보다 사랑한다고!



우리는 너무 높이 날았어.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거야.



Laurence, anyways.




=
'이 사랑을 보라!'

이런 사랑이 있을까. 얼마나 사랑해야 가능한 걸까. 이다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나 있는 걸까. 감독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사랑에 대해 이렇게도 깊고 촘촘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걸까. 느낀 게 참 많고 할 말도 참 많은데 그래서 더 적기가 힘들다.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더듬게 하는 영화였다. 기나긴 러닝타임도 찰나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사랑으로 어디까지를 극복할 수 있는것인지 평소 틈틈히 꽤나 치열하게 고민해왔기 때문일 거다.
이 지독한 사랑이 결국 가능했던 건가, 아니면 그 거침없던 사랑도 끝내 한계에 부딪혔다는 건가. 거기에 대한 판단도, 감상도 쉽게 형언할 수 없다. 함부로 정의하지 못할 그런 사랑이다.
네가 그 누구건 너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렇게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Laurence anyways."
그 말의 무게가 168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서서히 화면을 잠식한다. 이런 사랑을 아직 해보지 못했다는 점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건지, 가슴이 아파야 하는 건지. 이것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영화적인 부분을 보자.
한 장면도 버릴 것 없이 영상미가 자비에돌란의 재능을 내뿜고 있었다.

오프닝시퀀스부터 압도적이다. 거리 인물군상들의 표정을 향한 카메라의 클로즈업은 그 눈빛들 아래의 영혼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 날카롭고 깊었다. 화면 가득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샷만으로도 기나긴 설명을 뿌리부터 메울 수 있다는 걸 보란듯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줌인과 줌아웃의 속도와 깊이로 고요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형성하기도 했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활용한 여러 장면들도 단연 감각적이다. 시퀀스가 유독 뚝뚝 끊어지는 편인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만큼 완벽한 장면으로 꽉 채운 느낌이다. 벅찰 정도로. 분명 더딘 템포로 흘러가는 영화인데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건 아마 이런 편집 때문일거다.
그리고 그 총천연의 색조들. 벽지, 소품, 복장, 심지어 화장까지 빠짐없이 감각적이다.

로렌스와 프레드,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세차하는 차 안에서의 장면들이 특히 그랬다. 행복을 앗아가는 것들을 리스트에 적거나, 색깔이 주는 느낌을 되는대로 내뱉는 그 꾸밈없고 조금은 산만한 장면들. 서로에게 푹 빠져있는 연인들의 실제 대화를 엿듣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집을 읽은 프레드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그간 참아왔던 눈물같다. 그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사랑의 도피를 떠난 블랙 섬에서 형형색색의 여자 옷가지들이 축복처럼 휘날리던 모습도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장면이라고 본다. 그 장면에서 로렌스와 프레드는 행복, 그자체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이 모든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감칠맛을 더하는 건 적재적소에 치밀하게 깔린 음악이다. 운명교향곡 같은 클래식부터 하우스음악까지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음악은 영화의 스토리 호흡을 함께 따라가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장면을 압도할 정도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낮게 깔리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선곡을! 싶은 노래들이 많았다. 노래들이 그 자체로 이 영화의 감수성이 됐다. 죄다 찾아서 한동안 즐겨 듣게 될 듯 하다.

영혼을 압도하는 영화들이 있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보고난 뒤가 힘들어지는 그런 버거운 영화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먹먹해서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온종일 맘 속을 맴도는 종류의 영화다. 천재가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왠지 트레일러만으로 그런 기분이 들어서 아끼고 아껴놨다가(사실 개봉당시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보게 됐는데 예상이 맞았다.

이제 당분간 자비에 돌란 영화 몰아보기 시작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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