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FORD-UPON-AVON: 언어의 연금술사 셰익스피어의 고향

STRATFORD-UPON-AVON: 

언어의 연금술사 셰익스피어의 고향


이번 출장에 유독 들떴던 건, 어쩌다보니 셰익스피어 400주년 기념일인 4월 23일에 맞춰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이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그 축제의 한복판에 내가 있을수 있다니! 

하는 생각에 신이 났다. 

물론 400주년 당일 저녁에서야 런던에 떨어지는 바람에 가장 화려한 하루를 듬뿍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뭐 그런대로 좋은 스케줄이었다. 


관광안내소 입구에 설치된 간판! 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름다운 마을임은 틀림없었다. 

도착한 첫날은 호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짐을 풀고 템스강변을 따라 셰익스피어 관련 설치예술을 감상하려던 계획은 물건너갔다. 

런던 빅토리아 역 5분 거리 탑햄스 호텔 TOPHAMS HOTEL 절대 가면 안되는 악의 구렁텅이 같은 곳이다. 극악무도한 가족경영자들이 선량하고 어수룩한 여행자를 골라 등을 쳐먹는 구조로 운영된다.

우선 도착하면 예약당시와 다른 인근 건물로 안내하는데 같은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이름도 분명히 다르고 시설은 눈뜨고보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다. 전구 안들어오고 물 안나오고 딱 봐도 누추한 뭐 그런.. 여기서 강하게 항의하지 않으면 호구잡혀서 계속 거기 자는 거다. 다행히 잽싸게 관련 후기를 찾아보고 바로 항의했더니 오버부킹돼서 어쩔수 없었다며 다음날 방을 바꿔준다고 했다. 

그 좁고 후진 방에서 BBC2에서 해주는 생중계를 봤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의 로열셰익스피어극장에서 그야말로 성대한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때 열병을 앓았던 데이비드 테넌트가 캐서린 테이트와 함께 사회를 봤고 이언 매켈런, 주디덴치,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그동안 셰익스피어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내로라하는 영국 배우들이 전부 무대에 올라 명장면을 재현했다. 찰스 왕세자 등 왕족까지 총출동해 자리를 빛냈다. 

이걸 피곤을 무릅쓰고 감격하면서 봤다. 내가 이걸 생방으로 보고있다니!! 하면서. 
그러고 빠르게 형편없는 호텔방 현실로 돌아와 잠을 자는둥 마는둥 불편하게 잤다. 

도시 중심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햄릿 동상. To be or not too be. 
지난밤의 열병을 식히지 못하고 이튿날인 24일 취재 일정이 없었던고로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 행 코치를 탔다. 빅토리아역에서 한 두시간 갔던 것 같다. 

'영국과도 바꿀수 없다'는 대단한 아저씨가 태어난 곳이라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내가 영문학도이기도 했고, 언어를 그렇게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힌 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갔다. 13시간 비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도 고속버스 왕복 4시간을 감내하면서.

얘는 레이디 맥베스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이 작은 마을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다스리던 16세기 중반 여기서 태어났다. 사실 정확한 생일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동네에선 부유한 장갑제조업자가 아빠다.

 유년의 기록은 거의 없지만 1582년에 8살 연상의 앤 헤서웨이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다고 한다. 사실 1580년대 말부터 런던으로 넘어가 내내 런던에서 활동했으므로 여기 남은 그의 흔적은 많지 않다. 그는 1616년 4월 23일 숨졌다. 많은 사람들이 삼아일과 생일이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가 안내되고 있었다. 거진 다 끝난게 문제였지만
코치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조금 걸어가니까 마라톤을 마친 무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무슨 셰익스피어 어쩌구 마라톤 대회가 열렸던 것 같다. 나는 추워서 죽을 것 같은데 그들은 훌렁 벗고도 땀을 뻘뻘 흘렸다. 관광안내소 가는 길은 비교적 복잡한것 같기도 한데 코치스테이션부터 땅바닥만 잘 보고 걸으면 쉽게 표지를 찾을 수 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일단 관광안내소에서 책자를 대충 집어든 뒤에는 들어갈 곳을 찾았다. Encore라는 레스토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2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30분이나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맛있었다. 이게 영국에서 먹은 최초의 식사다운 식사였다. 무려 3끼만에!

레스토랑을 나오니 장이 서 있었다.
시장통을 지나니 보이는 로열셰익스피어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RSC)
RSC. 뭔가 왠지모르게 공장 느낌이 나는.. 1879년 설립됐다. 
극장의 뒷모습이다.
스멀스멀 비가 내렸다. RSC에서는 시간도 안맞고 예매도 안 했기에 작품을 보진 못하고 기념품 가게만 둘러봤다. 사고 싶은게 많았는데 꾹 참았다.
(이때 참길 잘했다. 몇시간 뒤에 생가에서 잔뜩 샀으니까.)

셰익스피어 작품 여주인공들 이름이 새겨진 보트들이 비오는 호수가에 고고하게 떠있었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날씨였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무거운 짐 낑낑대면서 호수가에 난 길을 따라 교회로 향했다. 

BBC 라디오3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RSC 별관? 같은 곳. 아 기억이 가물거린다. 
라디오 부스를 차려두고 마련된 이어폰을 꼽으면 부스에서 진행되는 생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한테 물어보고 싶은거 딱하나 물어보라니까 질문들이 귀엽다.
햄릿 후플푸프이길 바라는거냐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 여기 셰익스피어 묘비가 있다.

이런 모습이다. 화단과 스테인드글라스가 형형색색 아름답다. 햇살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트리니티 교회에 간 건 사실 셰익스피어 추도 예배 참석하고 싶어서였는데 바보같이 시간 확인을 안하고 갔더니만, 아마도 끝난거 같은 모양새였다.
이러나 저러나 시간 맞춰 참석할 여력은 안 될거 같아서 따로 묻지도 않고 돌아섰다. 

400주년 기념... 뭐라고 해야하지.. 아무튼 이런게 있었다. 안에 셰익스피어 들어있을것만 같은 느낌을 줬다.
여기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 잠든 묘지가 있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by bones.'
선한 친구여 부디 
여기 묻힌 흑을 파내지 말아주오
이 돌들을 그대로 두는 자에게 복이
내 유골을 움직이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

도굴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이 묘비명도 본인의 시라는 얘기가 있는데 확실한 게 없는 듯하다. 의외로 매우 현실적인 묘비명이다. 경고문에 가까운.

저게 보이는 이마 넓은 아저씨 셰익스피어. 

시내 모습은 대충 이러했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아기자기.


여길 통해 셰익스피어 생가 등을 둘러볼수 있었다. 사실 별 볼거린 없었다.
셰익스피어 센터, 생가는 서점과 인접하고있었는데 서점에서 그만 참았던 지름신이 내리고야 말았다. 

셰익스피어 얼굴이 박힌 에코백 하나랑 셰익스피어 대사들을 키워드에 맞게 모아놓은 모음집 같은 걸 샀다. Shakespeare Quote였나. 가격이 비싼 건 아니었지만 한 500페이지? 제법 두꺼운 양장본이었다. 언젠간 다 읽을거라는 신념으로 샀다. 그리고 글쓸때도 키워드별로 찾아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최후의 변명을 스스로에게 내세웠었다. 

내부 전시물. 자세히 보면 한글판도 눈에 띈다.
이밖에도 셰익스피어의 생애, 역대 무대 위나 은막 위에 오른 작품들 등을 정리해 소개해주는 영상이 있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갠 뒤의 생가 앞마당 모습.
저기 앉은 분들이 연주를 하며 노래했는데 중세로 타임머신을 탄 듯 고즈넉하고 좋았다.
생가는 삐그덕거리는 중세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방부터 그의 아이들이 태어난 방, 아버지의 작업실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한국어 안내가 있는 점이 신기했다. 각 방에 중세 옷차림을 한 채 배치된 직원들이 영어로 친절하고 재밌게 설명도 해 준다.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수 있는 작은 도시여서 대강 둘러보고 런던에 올라왔다.  생각보다 '축제'의 한복판을 즐기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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