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김영사


이렇듯 문자는 강한 허구적 실체의 출현을 도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조직하고 강, 습지, 악어의 실재를 재편하였다. 이와 동시에 문자는 사람들이 이런 허구적 실체의 존재를 더욱 쉽게 믿도록 만들었다.
p. 228

역사에는 단 하나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수천 개의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를 선택할 때 우리는 나머지 내러티브들을 침묵시키는 선택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p. 245-246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p. 247

하지만 사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p. 277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뿐이다.
p. 279

자본주의교가 성장이라는 지고의 가치에 대한 믿음에서 연역해낸 최고의 계명은 '너희는 너희의 수익을 성장시키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이다.
p. 291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새 지식을 찾아나설 매우 타당한 이유가 생겼고, 이것은 진보를 향해 가는 과학의 길을 열었다.
p. 295

인본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경험에서 인생의 의미 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해라. 이것이 인본주의가 우리에게 내린 제1계명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핵심인 종교혁명은 신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것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믿음을 얻은 것이었다.
p. 307-308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하늘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오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이 변했다.
p. 323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면서, 윤리적 지식을 획득하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지식=경험X감수성 이다.
p. 328-329

개인이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세계는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의미로 충만할 것이다. 이렇게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 정통 분파를 '자유 인본주의' 간단히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가 사회적 신망과 정치적 힘을 얻으면서 서로 매우 다른 두 분파가 생겨났다. 바로 많은 사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와 나치를 가장 유명한 신봉자로 둔 진화론적 인본주의이다.
...
하지만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자와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
만일 모든 권위와 의미가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다면, 각기 다른 경험들 사이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p. 343~344

따라서 자유주의는 많은 경우 오래된 집단 정체성 및 동족의식과 융합해 근대 민족주의를 형성했다.
p. 346

다윈주의 진화론이라는 굳건한 토대에 뿌리내리고 있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갈등은 한탄할 일이 아니라 박수 칠 일이라고 주장한다. 갈등은 자연선택의 원재료로 진화를 추동한다.
p. 350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과오를 범할까봐 문화 비교라는 지뢰밭을 조심스레 우회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이 지뢰밭을 통과하는 옳은 길을 찾는 문제를 당에 떠넘기는 반면,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그 안으로 신나게 뛰어들어 모든 지뢰를 터뜨리고 대혼란을 즐긴다. 그들은 먼저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모두 인간 외의 동물들과는 선을 긋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인간이 늑대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인간의 음악이 늑대 울음소리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고 시인한다.
p. 360-361

종교와 기술은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탱고를 춘다. 둘은 서로를 밀고,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에게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 기술이 종교에 의존하는 이유는, 어떤 발명이 이루어졌을 때 그 발명을 적용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목하기 위해서는 선지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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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기술은 흔히 종교적 비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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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은 오래된 신을 죽이고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p. 372

21세기의 주력상품은 몸, 뇌, 마음이 될 것이고, 몸과 뇌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디킨스의 영국과 마디의 수단 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실은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간의 격차보다 클 것이다.
p. 378

이 책은 21세기에 인간이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거라는 예측으로 시작했다. 이 예측은 독창적인 것도 대단한 선견지명도 아니다. 그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전통적 이상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p. 382


=

타고난 스토리텔러로서의 인간.
결국 이야기로 천착하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의미의 근원으로 회귀한다. '의미'라는 비효율에 집착하는 인간의 종특이 우리를 기계와 구분한다.
그렇기에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발달하는 기술의 한가운데서도 계속 인간됨의 의미를 전과 같고도 또 다른 방식으로 탐색하지 않을까. 그 집요한 탐구가 호모사피엔스의 멸절을 막는 힘, 인간을 영속하게 하는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의미와 권위의 원천은 하늘에서 인간으로, 또 인간의 피조물로 다시 옮겨가게 될까.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의 중심만큼은 흔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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