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다시 만난 그 도시를 천천히, 만끽하다
오랜만이었다. 런던은 6년만이었고, 따져보니 유럽 자체가 6년만이었다. 2010년 그 한해 그토록 원없이 유럽을 누볐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간들의 하루하루가, 한시간 한시간이 너무 아쉽고 소중해서 하지 못한 일들만 맘속을 맴돌았다.
그동안 한번 다시 갈 법도 한데 너무나 바삐 살았나보다.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러나는 감정이 너무 몽글몽글해서 고되기만 했던 출장 준비도 꾸역꾸역 할 수 있었다. 다시 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벅찼다.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 보려고 몰린 인파 |
숙소에서부터 웨스터민스터 쪽으로 쭉 걸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버킹엄궁에 도착했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중이었다. 근위병 교대식은 굳이 챙기면서까지 두번 볼 정도의 장관은 아니지만, 마침 하고 있는걸 지나칠 정도로 쓸모없는 행사도 아니다. 그래서 삐죽삐죽 들어가서 봤다.
셀카봉을 꺼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봤는데 버겁고 부끄러웠다. 2010년에 왔을때는 여름이 한창이라 너무 덥고 힘들었는데 차라리 추운 날씨가 나았다.
박물관, 미술관들은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 모두 패스했다.
멀리 떨어져서 보이는 궁 풍경 |
더 몰 끝. 여길 자나면 트라팔가광장이 나온다. |
근위병 교대식을 마치고는 더몰? 맞나. 암튼 그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먼듯하면서도 멀지 않은 길
런던의 상징 'UNDERGROUND'. 역시 명물인 2층버스 두 대가 보인다. |
최대한 거닐고, 그냥 도시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쪽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로 했다.
트라팔가 스퀘어. 우중충 |
대영박물관 |
단기간에 최대한 돌아다닐 수 있었던 비결이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오락가락 하기 시작했다.
매우 런던런던하고 있다.
솔직히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어떻게든 정리해보려니 생생한 감동이 풀죽었다.
이 길을 따라 각종 공연장들이.
옥스퍼드 서커스. 하늘이 맑아 보이지만 퇴근 시간 임박 시점이다.
웬지 횡단보도에 줄지어 선 사람들이 귀여웠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버버리' 본점. 무지무지 컸다.
원래 비행기 타기 전까지만 해도 트렌치 코트 하나 장만하려고 품번까지 전부 적어놨었는데 막판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주식계좌를 보니 새삼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런던 튜브와 오이스터 카드. 지난번에 영국에서 반납하지 못하고 10파운드인가 들어있는 오이스터카드 든 채로 귀국했었는데. 그걸 까먹고 또 안가져가서 카드를 다시 만들었고, 다시 그대로 들고 귀국했다. 지금 내 방에는 각각 10파운드 쯤이 들어있는 오이스터 카드 두 장이 있다. 영국을 다시 가야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빅토리아역의 아침. 수많은 기차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통역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너무 번잡해서 엇갈릴 뻔했다.
타워브릿지? 런던 브릿지? 밑 버로우 마켓. 비둘기만 없었더라도 더 한껏 즐겼을텐데.
사방에 즐비한 비둘기에 신경 곤두세우느라 초긴장 상태로 다녔다.
런던의 눈.
빅벤과 빨간 2층 버스.
잘린다 잘려.
다시 런던아이. 2010년에 탔을 때 생각보다 길어서 지루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그래도 저 위에서 본 야경은 찬란했다. 그냥 그때 기억 간직하고 싶어서 안 탔다.
골목골목. 코벤트 가든 가는 길. 걷고 또 걷다 보니 평소의 결코 걷지 않을 것 같은 거리도 삽시간이었다. 얼마나 걸음걸음을 즐기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코벤트 가든 도착!
또 의아한 일인데 이번에도 영국에 있을 동안 내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았다.
이 앞에서도 그랬다. 누가 봐도 여행자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길을 당연하게 물어서 당황스러웠다. 몇 번은 아는 지리라서 잘 알려줬다.
벨기에 살 때는 그런 일이 많았는데, 그건 내가 실제로 거기 살기 때문에 어디선가 여유가 우러나왔나 하고 생각했었다. 내 얼굴에 길 잘 찾는 애라고 써 있는 걸까.
한때는 길치였는데 놀랄 만한 성장이다.
가게들이 많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만큼은 분명히 들었다.
쥬빌리 마켓.
가운데 보이는 Boulevard 에서는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이날은 지나치기만 함.
스테이크 먹었다. 연어 샐러드는 별로였다. 나는 비트가 싫다. 비트를 다 남겼더니
너 비트 싫어하는구나? 라고 해서 멋적게 웃었다. 죄송해요 사장님.
라이시엄 극장. 여기서 라이온 킹 봤다. 나름 기왕 보는거 비싼 자리에서 본다고 제일 좋은 자리 택했는데 기-승-전-결에서 승까지만 제대로 보고 전과 결 전반은 못봤다. 잠들었기 때문이다. 겁나 잘잤다. 푹 아주 개운하게. 라이온킹을 봤는데 나쁜 삼촌이 죽는 장면을 못 보다니. 무대와 객석을 허무는 무대연출은 참 좋았다. 총천연색의 각종 동물 장치들도 예뻤다. 좀 더 많은 동심이 있었더라면 졸지 않았겠지.
건물 색도 예쁘고, 하늘도 예쁘고. 코벤트 가든 가는 길.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정말 뒤죽박죽이네. 그래도 기억하니까 장하다 전수민.
다음날 일정을 쪼개고 쪼개서 아침 일찍부터, 출근 시간에 가디언에 갔었다.
뭔가 뿌리를 알 수 없는 직업적인 호기심 때문이랄까.
소심소심하게 에스컬레이터 타고 로비까지만 접근했다.
편집국 내부 모습은 이러하다. 편집국을 통유리로 공개할 수 있는 저 당당함.
우리 편집국 너무 쓰레기같아서 어디 까놓지 못한다.
건물 외관.
캠든 마켓. 뭔가 힙한 거리. 막연히 마켓이니 아침부터 열지 않을까 하고 갔다가 대낭패.
막 열준비 하고 있긴 했는데 사람보다 비둘기가 많았다.
벽화랑 건물 색, 간판 등등이 아기자기 세련되고, 좀 조잡했지만 젊었다.
본격 시장 느낌.
오래된 LP판과 카메라들을 이렇게 팔고,
아름다운 헌책방도 있었다.
이 헌책방이 맘에 들어서 한참을 있었다.
셰익스피어 책 고르려고 했는데 마땅한거 못 찾고 빅토리아 시대 시집 하나 골랐다.
주인 아저씨는 동양 애가 영문학 전공이라고 하니까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봄.
빅토리아 시집 속표지에 주인아저씨의 싸인을 요구했다.
얘 뭐지? 하고 갸우뚱하다가 즐겁게 해주셨다.
생과일 쥬스. 사먹고 싶었는데 헌책방에 넘 오래 있어서 다른거 할 시간이 없었다.
성 폴 대성당.
한장에 담기 벅차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지만
역시나 힘들다.
런던 언더그라운드. 쌩~
가디언을 찾았을 때와 같은 심경으로 출근 시간대 BBC를 찾았다.
여기에는 영드 성덕으로서의 깊고 뜨거운 열정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카디프?였나 아무튼 뉴스 제외한 대다수 파트가 다 이전했다고 하니
드라마의 본령은 여기 없는 셈이었다.
오오 BBC 저널리스트 님들이시다.
뭔가 있어보였다.
이 닥터 때부터 보지 않았는데. 그가 있었다.
뉴스, 날씨, 여행, 스포츠.
다알~렉.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타디스. 문 열어보고싶었는데 안열릴거 같이 생겨서 그만뒀다.
혼자 여행해면 소심해지기 마련이다.
뉴스룸 사진 찍고 싶었는데 '저널리스트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엄격히 금지한다'는
멋진 이유로 금지돼있었다. 몰래 찍을만큼 심장이 크지 못했다.
대신 결코 읽지 않을 것만 같은, BBC 라디오 시 소개 방속에 나온 시 모아둔 600여쪽짜리 시집을 샀다. 기념품 삼아 로고 박힌 볼펜도 한 15자루 샀다.
셜록홈즈 박물관. 아저씨 추워보여요.
모자 쓰고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주셨는데
대충 옆에 어색하게 기대서 찍는 걸로 그쳤다.
베이커 스트리트의 멋진 플랫폼. 셜록의 그림자.
말탄 경찰즈.
마지막날, 공항가기 전 급하게 시내 중심 곳곳을 싸돌아다녔는데
내 맘처럼 비가 내렸다. 귀국을 통탄하는 눈물 같은 수준.
더블데크 맨 앞자리에서 찍으니 한 폭의 수채화같은 멋진 사진이 나왔다.
찍고 나서 오오오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는 하늘.
비오기 직전 흐린 하늘.
웨스터민스터 역.
우박까지 쏟아지기 시작해서 모두가 비를 피해야 했다.
하루에 정말 사계절이 다 있었다.
경찰과 의사당.
거짓말처럼 맑아진 하늘.
런던이 선사한,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오후.
드럽게 뒤죽박죽이네. 이건 다시 맨 처음의 버킹엄이잖아.
셀카봉이라는 인류의 신문명 덕에 6년 전보다 한결 편하게 봤다.
원래 볼 생각 없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하고 있길래.
이건 문제의 졸음 범벅 라이온 킹.
이건 오페라의 유령 무대. 막 오르기 전.
이때도 절정에서 졸았다. 시차 탓이다.
중간 쉬는 시간.
지하철역 향해 걷다가 흘깃 본 야경.
밤길 아무래도 혼자는 무서워서 적극 야경을 보지 못했다.
또 볼 날이 있겠지.
라이온킹 쉬는 시간.
객석 이랬다.
쉬는 쉬간에 브로셔 같은 걸 팔던 훈남님.
벌써 4개월 가까이 지나버렸다. 시간이 참 빠르다.
가까이 있을때 소중한 걸 모르는 것은 인간의 습성인가 보다. 다시 가보니, 그때 내가 가까이 있었을때 시덥잖게 보던 것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벅찬 감정 때문에 벨기에를 다시 가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그렇게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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