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3의 게시물 표시

담당자

기자가 되고 가장 반가웠던 소식중 하나는 무제한 무료통화제의 탄생이었다. 그만큼 전화를 달고 사는 직업이다. 전화벨이, 진동이 반갑지 않은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기자 일을 그만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이 울릴때 누굴까 기대하며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아무튼 전화랑 기자는 애증의 관계다. 하루에 '적게는 15통'의 전화를 주고받는다. 오늘은 특별히 전화를 '신나게' 건 날이었다. 마감하고 통화 내역을 살펴보니 총 67통을 걸고 10통을 받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의 일이다. 전화 취재를 하다 보면 늘 소리지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대체 망할 담당자가 누구야!!!!!!!!!!!!!!!!!!!!!!!!!!!!!!!!!!!" 라고 말이다. 분명 홈페이지에서 애써 담당자 찾아가며 전화를 걸었건만 한번에 통화가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흔히 반응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제가 전화를 당겨 받아서요 돌려 드리겠습니다. 2. 담당자가 지금 회의중이라서요, 3. 담당자가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데요, 4.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전화 돌려 드리겠습니다. 1-> 돌려 드린다더니 전화 뚝 끊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2-> 담당자는 하루 종일 회의만 한다. 3-> 담당자는 전화 걸 때마다 방금 나가셨다. 4-> 전화 돌려 받은 사람도 담당자는 아니다. 늘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원하는 대답의 절반 쯤을 들을 수 있다. 내 취재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놈의 담당자는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도 정체모를 담당자를 찾아 하루 종일 전화를 걸었다. 했던 말을 스무번쯤 반복하려니 이골이 났다. 앞부분은 녹음해뒀다가 틀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내일도 내 불굴의 통화의지와 그들 발언의 조각들이 모여 한편의 기사로 거듭나길 바랄 뿐. 이제 마포로 가서 동기들과 저녁 번개를 즐겨야겠다. 내

미술관 옆 동물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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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리는 것인 줄은 물랐어." "요즘 사람들 사랑은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각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꼴 같아. 조금은 이기적이고 또 조금은 개인적이고 왠지 뭔가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다 내주지 않는..." "난 정말 달인가 보다. 내 안에서는 노을이 지지도 않으며, 그에게 미치는 내 중력은 너무도 약해 그를 당길 수도 없다." "멀리 있는 별들은 더 빨리 멀어져서 절대로 따라잡을 순 없다지. 그는 그 별들처럼 더욱더 멀어지고 난 결코 그에게 다가갈 수 없겠지. 그와 나 사이엔 수억 년의 차이가 있다. " "평균 수명이 길어졌으니까 그만큼 철도 늦게 드는 거야." "별은 언제나 과거의 빛이다. 저 별의 현재는 이미 먼 미래가 되어버렸다. 현재를 아주 보잘것 없이 만드는 그 막대함이 마음에 든다."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시작도 안하고 아쉬워하는 것 보다 나아. 후회보다 미련이 훨씬 오래가는 법이거든." 오래된 멜로 영화는 촌스럽지 않다. 멜로라는 장르의 본질은 시대가 흐른대도 크게 변할 것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나 오늘날 수목드라마에서나 98년에 개봉한 영화나 2018년에 개봉할 영화. 이들의 대사 한 줄에서 내 감정을 단련할만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건 줄리엣도, 춘희도, 태공실도, 나도 모두가 같은 감정을 앓는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물들어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자신을 되찾기까지는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눈먼 감정의 바다를 한없이 헤맸다. 한 발짝 떨어져 내 어린 감정을 돌아볼 때, 나는 부끄럽지 않은가? 미안해야 하는지, 고마워야 하는지, 미워야 하는지, 정다워야 하는지, 그리워야 하는지. 복잡하다. 확실한 건 사랑한다는

김상혁, 싸움

강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비좁은 보행로를 걸어가는 권투 선수의 펼쳐진 왼손처럼, 건널목에 서게 되면 건널목만을 생각하는 머릿속처럼 무심하고 고양되지 않는다. 눈빛이 마주칠 때 무서운 건 무엇인가. 실제로 아무런 싸움도 나지 않는데 이렇게 등을 돌리고 누우면 강함은 너의 침묵 속에 있다. 고요함은 나에게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눈빛이 마주치지 않는데 깜깜한데 내일의 너는 멀고 무더운 나라 낯선 이웃들이 자꾸 인사하는 어떤 문밖에 서서 우리의 침대를 태우고 있거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모든 문밖에 계속 서 있을 것만 같은. 실제로 아무런 눈물도 흘리지 않는데 앞으로는 너의 교외가 슬퍼질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너에게 나는 웃는 사람인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나는 너에게 강한가. 내가 주먹을 내지른 공간이 건너편 방의 침묵 속에 쓰러져 있다면 그것의 인내는 언제까지인가. 등을 돌리고 강해지는 우리들. 두려워도 상대의 눈에서 눈을 떼지 마라. 어쩌면 다음을 위한 이런 규칙을 깨야 할 때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할 때 나는 고요한 나에게 대해 얼마나 강한가 - 심장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사소하고 어리숙한 나는 스스로의 감정 앞에서도 부끄럽다. 만약을 가정하니, 지금의 나는 사라져버렸다. 무섭다.

침묵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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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이승환 노래를 듣고 있다. 행여 누구라도 마주칠까 꽁꽁 싸매고 간 GMF의 대미를 장식한 그의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맴맴. 어젯밤, 조금은 몽롱한 채로 무심하려 애쓰면서, 내 등 뒤에서 흥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더랬다. 추억의 페이지 하나가 또 쓰였다. 노랫말들이 마음을 만진다. 왠지 느슨하게도 긴 하루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집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젖은 빨래처럼 유독 처지는 시간들. 몸도 맘도 나른한채로 무디게 기사를 쓰고 시간이 가기만을,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다. 그대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간절한 그리움. 문득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따금씩 괜히 슬픈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

용기와 후회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기 바빴던 입사 동기 하나가 어제 용기를 냈다. "캡한테 그만둔다고 말했어." 오늘부터 그는 더이상 기자가 아니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는 하루만에 모든 정리를 마쳤다. 그토록 그를 힘들게 하던 것들, 라인, 캡, 노트북, 녹음기, 야근, 숙퇴, 백업, 이 세계만의 개념들과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 동창이자 동갑내기 친구다. 수습기자가 된 뒤에야 새벽녁 채 뜨지 못한 눈을 부비며 경찰서를 누비다 만난 사이다. 긴 인연은 아니다. 그러나,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린 쉽게 마음을 열었다. 서로 연락만 닿으면, 얼굴만 마주하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 '적성에 안 맞나봐', '1년도 못 버틸 것 같아'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는 말이었고, 그의 얘기가 곧 내 얘기였다. 우리는 같은 문제에 부딪혀 허덕였고 같은 부조리와 같은 불합리에 눈물흘렸다. 때려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였지만 사표를 썼다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유인이 된 것에 축하를 건넸다. 마지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는 그는 '이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토익점수에 허덕이는 취준생이 되겠지.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꿈,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우리의 직업. '기자'라는 알다가도 모를 이름. 우린 한때 정말 죽도록 기자가 되고 싶었다. 많아야 열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천명이 몰려들어 숨을 죽이고 글을 써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그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었기. 내 꿈이 '기자'라는 데 왜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10개월동안 그 꿈을 살았다. 지금과는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다시 살아가게 됐을 때 어쩌면 그의 말처럼 후회가 찾아들지도 모른다. 난 지금도 그 꿈속을 헤메고 있다. 견디고 있다. 지금으

천양희, 오래된 가을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싸이어리를 뒤적거리다 수년 전 어느 가을 적어둔 이 시를 만났다. 당시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저 질문들에 몽땅 긍정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남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 강변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세계가 지나온 모든 것들을 알고, 수용하고,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 내게는 생소한 모습, 앞으로도 알지 못할 모습을 마주치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격차를 나의 실패로 느끼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기록은 무서운 행위다. 쓰여지는 순간에 한번, 또 속절없이 읽히는 순간에 다시 한 번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읽고 또 읽어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사실 나도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의 정확한 꼭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렁이다 사라져버릴 이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 아무튼 안팎에서 가을이 무르익는다.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이 계절에 어느것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마음 끄트머리에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집들이

블로그 이사를 마쳤다. 세 번째 블로그다. 싹 갈아엎고 새로 시작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올해의 시선은 이어가고 싶었다. 쓰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고, 읽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한다. 올해는 혼자만 끄적이려고 했던 블로그였는데 나의 싸이어리를 사랑해주던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독자가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부끄러워지는 글이라면 어디에라도 쓰지 말아야지. 정 쓰지 못하겠는 말들은 집어삼키거나, 손으로 적는 일기에 토해내면 되겠다. 누군가 나 죽은 뒤에나 열어보겠거니 하고. 이사 끝.

유하, 달의 몰락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 수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아니 그 전락을 홀로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충분히 외롭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 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 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 없음을 사랑한다 그 쓸모 없음에 대한 사랑이 나를 시 쓰게 한다 그러므로 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호의보다는 날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냉랭한 매혹에게 운명을 걸었다 나를 악착같이 포용해내려는 집 밖에는 보름달이 떠 있다 온 우주의 문밖에서 난 유일하게 달과 마주한다 유목민인 달의 얼굴에 난 내 운명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만 달은 그저 냉랭한 매혹만을 보여줄 뿐이다 난 일탈의 고독으로, 달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대부분은 달을 노래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달은 몰락한다 난 이미, 달이 몰락한 그곳에서 둥근 달을 바라본 자이다 달이 몰락한다, 그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내 노래도 달과 더불어 몰락해갈 것이다 - 유하의 시집을 다시 읽었고, 시기 적절한 때에 이 시를 다시 만났다. 일탈의 고독. 쓸모 없음에 대한 사랑. 대놓고 나 연애시요 하는 시들보다는 쌉싸름한 여지를 주는 유하의 시들이 좋다. 제목처럼 결국은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다. 달로 차오른 연휴는 무너지는 달과 함께 끝났다. 달의 몰락이 시작됐다. 이제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복귀. 달이 사그러들고 또 차오르는만큼, 시간은 그렇게 뉘엿뉘엿 흘러가겠지.

Elizabeth Bishop, One Ar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s that? 여전히 상실은 재앙일 뿐이다. 결국 쓰려던 말은 그렇다. 내게 두 도시와 같은 것들, 두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천천히 쏘다니는 것이나 지칠 줄 모르고 머뭇거리는 것. 이런 말들의 만남이 주는 오묘한 기분. 지난 겨울엔 기형도 시집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시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읽었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계절엔 평소보다 조금 많은 감정을 떠안고 마음속을 헤매이곤 했다. 그 겨울엔 기형도였다. 아, 기형도와 이육사였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네 행이 마음에 든다.

William Ernest Henley, Invictus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 마지막 두 행이 참 좋다. 2년 전 엽서에 적어 재수하는 동생에게 보낸 시다. 동생이 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며 투덜거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낯뜨거운 암송까지 해야 했다. 뜻은 직접 찾아보라고 했는데, 스무살의 내 동생은 누님의 깊은 마음을 알아 들었을런지 모르겠다. 지금, 내 영혼과 마음은 어디로 항해하고 있는 걸까. 옳게 가고 있는걸까. 주인 의식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처 없이 걷게 되는 세상이다.

이장욱,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서로 다른 아프리카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 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사소한 운명을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그가 결연히 뒤돌아서자 그녀는 우연히 같은 리듬으로 춤을 그리고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면 물이 돼버려 그는 零下의 자세로 정지하고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시작하고 당신은 그저 뒤를 돌아보겠지만 성탄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끝날 거야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 그와 그녀와 당신. 담담하다. 흑백 필름같은 사랑이야기이라고 생각한다. 별다를 것 없는 말들이 별다른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는 아주 오랫동안 격언처럼 나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진은영, 대학시절

내 가슴엔 멜랑멜랑한 꼬리를 가진 우울한 염소가 한 마리 살고 있어 종일토록 종이들만 먹어치우곤 시시한 시들만 토해냈네 켜켜이 쏟아지는 햇빛 속을 단정한 몸으로 지나쳐 가는 아이들의 속도에 가끔 겁나기도 했지만 빈둥빈둥 노는 듯 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담배만 피우던 시절 - 학관의 이미지가 눈에 선명한 시 다른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같고도 다른 시기를 겪은 사람의 시선이다. 학관 담배나무 앞을 단정한 몸으로 지나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과 때묻은 생각들 모두 내려놓고, 비우고 싶다. 낡은 교실에서 읽던 16세기의 시들을 곱씹으며 교정의 고요에 귀기울이면서 그렇게 거닐고 싶다. 오늘 점심엔 무얼 먹을까, 김밥 줄이 길지나 않을까 하는 소소한 고민에 들썩이면서. 여유는 언제쯤 오려나

신용목, 칼끝에 혀끝을 대보는 순간

칼끝에 혀끝을 대보는 순간, 개수대에 물이 사라지고 크르르륵 물소리가 수만 가닥 혈관을 타고 공중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손잡이가 부러진 칼처럼, 문득 거꾸로 떨어지는 형광등빛-갈비뼈를 밟고 지나가는 시간의 하얀 발바닥, 이중새시 너머 상가 불빛이 껌을 씹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담겨 있다고 믿는다 쏟아지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잠시 구정물에 뜬 얼굴로 출렁이다 크르르륵, 소용돌이 아래부터 빠져나갈 몸은 한 바가지 몸, 사는 것의 불빛 속에 잘못 고일 때 도마의 칼자국처럼 새겨지는 정적 속으로 문자가 온다 낙엽은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함구의 현장으로 강도처럼 손잡이가 부서진 칼처럼, 문득 떨어지는 붉은 혓바닥 보십시오 고요가 순간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곳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살해를 한다, 개수대에 물이 사라질 때 먼빛이 가까운 빛에 섞이고 난도당한 순간이 제 시신을 공중에 흩어놓을 때 - 어제 다섯시, 캡과의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시경뜨락을 찾았다. 좀이 쑤시던 까닭에 조금 일찍 도착했고 '화제의 문학'이란 스티커를 달고 책장 한켠에 다소곳이 놓여 있던 신용목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읽은 게 바로 이 시였는데 공교롭게도 나의 요즘과 맞아떨어지는 시어들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함구의 현장, 강도처럼, 문득 떨어지는 붉은 혓바닥, 고요가 순간을 찌르고 있습니다.............. 매일 내가 분투하는 현장의 언어들이다. 신기하게도 이 시를 읽고 돌아와 구로경찰서에서 자살 사건을 인지했고, 아니나 다를까 나는 함구의 현장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한편으로는 이 정교한 시어들의 세계를 비루한 일상속으로 끼워맞춰 단편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배가 고픈데 선배는 아직 밥 먹으란 지시를

유하,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대나무숲,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본다 저 바람 속 모든 새집은 새라는 육체의, 타고난 휘발성을 닮아 있다 머무름과 떠남의 욕망이, 한 순간 망설임의 몸짓으로 겹쳐지는 곳에서 휘파람 소리처럼 둥지는 태어난다 새는 날아가고 집착은 휘파람의 여운처럼 둥지를 지그시 누른다 매혹의 고통은 종종 새의 가벼운 육체를 꿈꾸게 한다 하여 나의 질투는 공기보다 가볍다 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휘파람새가 비상하기 직전의 날개, 그 소리없는 찰나의 전율을 빌려 난 너의 내부에 둥지를 튼다 - 사라지고 싶은 것일까. (2013/04/27)

강은교,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나는 너무 쉽게 꿈꾸고, 흐르고, 피었던 걸까. 내 속의 날개와 강물, 구름과 별을 알아달라고 채근하고, 보채고 그러지 않았나. 언제부턴가 이 시를 외워서 쓸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연이 위로가 된다.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You know what? Fuck beauty contests. Life is one fucking beauty contest after another. School, then college, then work... Fuck that. And fuck the Air Force Academy. If I want to fly, I'll find a way to fly. You do what you love, and fuck the rest.  I wish I could just sleep until I was eighteen and skip all this crap-high school and everything-just skip it. Do you know who Marcel Proust is? He's the guy you teach. Yeah. French writer. Total loser. Never had a real job. Unrequited love affairs. Gay. Spent 20 years writing a book almost no one reads. But he's also probably the greatest writer since Shakespeare. Anyway, he uh... he gets down to the end of his life, and he looks back and decides that all those years he suffered, Those were the best years of his life, 'cause they made him who he was. All those years he was happy? You know, total waste. Didn't learn a thing. So, if you sleep until you're 18... Ah, think of the suffering you're gonna miss. I

64, 요코야마 히데오

나긋나긋한 태도로 경찰 특유의 체취를 지운 채 보도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척, 경찰 조직의 폐쇄성에 분개하는 언론의 부당한 항의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겉으로는 '홍보와 소통의 부서'를 표방했지만, '소통'이란 대부분 기자들의 가시 돋친 말을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에 불과했으며, 여론의 대변자인 양 행세하는 그들의 스트레스 배출구를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방파제 같은 존재일세." 당시 홍보담당관은 그렇게 자조했다. 언론의 비위를 맞추며 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 경찰을 비판하는 창끝을 무디게 하는 것이 공보 업무의 전부라는 투였다. p.22 기자실은 특수한 공간이다. 수많은 경쟁자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의 동향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지애적인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경찰을 상대할 때 그 연대감은 공동전선으로 바뀐다. 아까처럼 경찰을 무색케 하는 단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월급 나오는 곳은 제각각이다. 각 회사마다 방침도, 분위기도 다르다 보니 모두가 한마음일 수는 없다.  p.40-41  - 기자실 선배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책.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데는 직업병이라 분류될만한 일종의 편집증이 기여했다. 그렇게들 경찰서와 기자실, 사건, 사스마리를 떠나고 싶다고 노래노래를 부르면서도 이렇게 맴도는 것은 일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일까. 무튼 위의 두 부분에는 꽤나 공감이 갔다. 흡입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 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 걸작'이라는 수식에는 걸맞지 않는다고 해 두자.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하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파라켈수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p.40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p.69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p.81 순수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이고 보호, 존경, 책임, 지식을 의미한다.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힘의 실현이고 집중화이다. 사랑에 내포되어 있는 기본적 긍정은 본질적으로 인간 성질의 구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향하고 있따.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p.84 우주에서도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힘은 개념적 영역과 감각적 영역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궁극적 힘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2013)

 All the bright precious things fade so fast... and they don't come back.  You can't repeat the past. Can't repeat the past? No... Why, of course you can... of course you can.  "They're roteen crowd. You're worth the whole damn bunch put together." I always glad I said that. It was the only compliment I ever paid him. Gatsby believed in the green light, the orgastic future that year by year recedes before us. It eluded us then, but that's no matter - tomorrow we will run faster, stretch out our arms farther...And one fine morning -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미루고 미루다 비로소 봤다. 사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하진 않는다. 전공에선 결코 빼 놓을 수 있는 시대의 얼굴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자주 접해야 했지만 그때마다 유쾌하진 않았다. 어쩌면 그가 시대의 불편한 뒷얼굴을, 인간 허영 넘어의 실체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위대한 개츠비는 영한문 통틀어 다섯 번 정도 읽어본 것 같다. 처음에는 왜 대체 이 작자가 위대한 인간인건지 조금도 와닿지가 않았다. 독서를 거듭할수록 그런 의문은 조금씩 사라져갔지만 어딘가 의뭉스러운 감정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피츠제럴드야 워낙 특유의 문체가 아름다운 작가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그는 첫 수업 시간에 엄숙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웃겼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 p.8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p.9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덥하여 내 '메타포'를 고평했다. "메타포라는 게 뭐요?" 강사는 씩 웃더니 - 그 웃음, 마음에 안 들었다 - 메타포에 대해 설명했다. 듣고 보니 메타포는 비유였다.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p.11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p.31-32 요즘 시인들 시는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그래도 이런 구절은 좋다. 적어둔다.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_김경주, '비정성시非情聖市'" 같은 시 중에서 또 한 구절.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밀주密酒였다/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p.36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나를 낳은 어머니, 당신 아들이 곧 죽어요. p.48  "우연히요. 정말 우연히요." 은희가 말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p.63   사람들은 악을 이

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 ... 배고픔, 이건 욕망이다. 이것은 열망보다 더 광범위한 열망이다. 이것은 힘으로 펴한되는 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약함도 아니다. 배고픔은 수동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 그는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다. p.20  유년기가 그 천부적 재능의 원천이었던, 시인 랭보가 <끔찍하게 밍밍한> 동시대인들의 시를 혐오스럽게 떠올리며 요구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요구하는 것과 똑같다. 강렬한 것, 아찔한 것, 끔찍한 것, 역겨운 것, 이상야릇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열망에는 절묘한 음악이 부족하다.> p.28  갑자기, 삶이 난항을 예고했다. ... 네 살이니, 나는 이미 신성한 나이를 지났고, 따라서 더이상 신성한 존재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렇다고, 니쇼상은 나를 설득하려 들었지만 말이다. 내 깊숙한 내면에서야 내가 신과 같은 부류라는 느낌을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지만, 유치원이든 다른 곳에서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평범한 부류에 합류한 것으로 비친다는 증거가 매일 같이 확보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애당초부터 난파의 색을 띠고 있었다. p.59   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일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애인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 이제 나의 독서는 이 수수께기 같은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였다. p.169   나는 이상하게 어린 시절부터 의식 속에서 성장은 곧 쇠락이요, 이 영속적인 상실의 과정은 여러 개의 잔혹한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늘 생각하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그냥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p.51-52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너도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예요." p.85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p.378  "그렇지만 참 이상해." 에리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쓰쿠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p.386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그것이 쓰쿠루가 핀란드의 호숫가에서 에리와 헤어질 때 했어야 할, 그러나 그때 말하지 못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디로 허망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p.56 "그렇지만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무츠키 씨를 좋아하지." 곤은 태연한 얼굴로 주저없이 말한다. p.140 "왜 그래?" 간신히 소리내어 내가 물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수는 없는거야." 무츠키도 간신히 소리내어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쇨를 하는 거야.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랬잖아. 우리 둘 다 그러고 싶어하는데, 왜 그럴 수 없다는 거지?" ....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간다. p.152-153 "이제야 간신히 독립한 부부 두 사람을 위하여." ... 나는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이고, 언제 다시 와장창 무너질지 모르는 생활, 서로의 애정만으로 성립되어 있는 생활. 그건 그렇고, 이게 무슨 곡이었더라. 아주 초기 앨범의 첫 곡,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를 듯한 곡. " 지? 이곡." 나의 기분을 꿰뚫어보듯 곤이 말했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샴페인을 한 잔 더 따라 마신다. "오늘 선물은, 내년에 한꺼번에 줘도 좋아." 쇼코가 말하고, 눈 앞에서 세잔느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지었다. p. 203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의 형태를 우리가 감히 규정지을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사람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또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다른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랑들. '정상'이랄 건 있을 수 없지만, 주기만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모든 게 지금까지보다 더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과거에는 항상 끝났던 곳에 이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옛날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이 생겼다. 이제 모든 게 그곳으로 간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르겠다.   p.11-12 저 작은 달이 못하는 짓이 없다. 달 주변에서 모든 게 밝고 가볍고, 밝은 공기 속에서 은근하면서도 뚜렷이 보이는 그런 날들이 있다. 바로 가까이 있는 것도 먼 곳의 음향을 갖고, 멀리 물러나 다만 보여질 뿐 다다르지는 못한다. p. 25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 )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벽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p. 26-28 이 모든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 같기만 하더라도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그저 가능한 것 같기만 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 하리라. 이런 불안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은 아무라도, 하지 못한 일 중에서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하기 시작해야 한다. 아무라도 좋다. 전혀 적임자가 아니라도 좋다. 이 젊고 보잘것없는 외국인 브리게는 6층 방에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글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변종모

갑자기 허전했다. 상관없는 사람과 길 위에서 보낸 시간들은 늘 허전했다.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절대로 면역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 면역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려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그날, 베나울림에서 우리가 나눠먹었던 골뱅이 조갯국처럼 우리는 각자 둥글게 잘 살고 있는 것이거나 잘 견디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무엇도 되려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결국, 잠시 살다 가는 세상에서 영원하고자 하는 마음쯤은 길 위에 버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우리에게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p.35 삶이란 문득 이렇게 경건한 것이다. 버릇처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기꺼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때로 외롭고 지루하거나 힘든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겨낸 뜨거운 마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만난 한 가닥 한 가닥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걷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큰 포만감을 줄 것이다. 팔미라에서 처음 올리브 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때부터 그 작고 푸른 열매가 좋았다. 이유 없이 좋았다. 그렇게 이유 없이 좋아하다 보면 끝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왜 사랑하느냐고 묻지 마시라. 그냥 사랑하고 그냥 좋아하는 그 마음이 가장 순수한 것을. 그것을 의심하지 마시라. p.99 너는 내게 특별했으므로 오로지 내 가슴만 와인처럼 출렁거렸다. 너는 단지 한 잔의 술을 권했을 뿐인데 나는 그것을 한 공기의 따듯한 밥처럼 여겨 착한 마음으로 받았고, 너는 단지 이 밤이 좋다고 말했는데 나는 함께여서 좋았다. 한 사람씩 빈 병처럼 쓰러져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텅 빈 주방은 우주처럼 넓었지만, 그중에 가장 밝은 별로 빛나던 너 때문에 나는 그 공허한 공간이 좋았다. p.111-112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지라도 내게는 전부인 그날들. 낯선 길 위에서 쓰디쓴 시간을 함께해준 그날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 . . 그래도 나

11분, 파울로 코엘료

나는 이때껏 사랑을 자발적인 노예상태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자유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존재하니까.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낀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p.122 그는 남자다. 그리고 예술가다. 그는 알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목표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타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 옆에 우리의 감정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을 때에야 우주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p.155 난 사랑을 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사랑만이 필요하다. 잘못 살 사치를 부리기에는 삶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다. p.268 어떤 것들은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좋아서 뛰어든 대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모두를 갑갑하게 한다. 사내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지옥을 거친 것이다. 서로 사랑하자, 그러나 소유하려 들지는 말자. p.271 "내가 많이 사랑한 이 여자에게 축복을." 그의 말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또다시 포옹했다. p.338 그녀에겐 농장을 살 돈이 있었고, 창창한 앞날이 있었고, 삶에 대한 많은 경험과 강인하고 독립적인 영혼이 있었다. 하지만 선택은 늘 그녀 대신 운명이 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힘껏 껴안았다. 스크린에 '끝'이라는 자막이 뜬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궁금하지

2013년 8월 20일 오후 7시 41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1. 엉망진창이다. 웃음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지만 눈물은 흘러간 흔적을 남긴다. 어제는 아침부터 혼났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인데 눈물이 났다.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해도 툭툭 눈물이 떨어지는 그런 날. 어젠 그런 날이었다. 2. 풀어지지 않은 마음은 쌓여만 간다. 멈춰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지만 마음은 너무 쉽게 변한다. 노랫말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걸까. 3. 왜 행복한 시간에 대해선 쓰지 못할까. 행복하지 않은 채로 글을 쓰는 것은 직업적 숙명일까 존재적 운명일까. 4. 나침반이 필요하다.

2013년 8월 16일 오후 5시 5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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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일진기자실에 출입을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고. 여유가 없었다. 올 여름 사건의 매 순간마다 내가 있었다.  아시아나 사고, 용인 토막살인, 노량진 수몰사고, 태안 캠프, 방화대교 붕괴 등. 그 거칠고 아픈 경험들을 통해 나는 과연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살인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책임자들의 뻔뻔한 뒷모습을 지켜보며 바다에서 찬 시체로 돌아온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지금 내 생활을 곱씹어보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수습때가 나았다. 시키는 것만 하면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뿐더러 우리 선배들은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것은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책임'이란 걸 스스로 지게 되고 펜을 휘두르게 되면서 여유도 정신도 점점 없어진다. 자신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 그만두고싶다고 징징대다가도 그만두면 딱히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어 망설여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나 싶다가도 '나아질 건 없다, 타이밍을 놓쳐서 그만두지 못한다'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지나면 이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될까. 시간이 흐르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볼 때면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때 하는 생각이 '그때 그만뒀어야 하는데'가 아니라 '그때 그만두지 않길 잘했어'이길 바란다. g.o.d. 의 길과 김윤아의 going home. 내 기분은 그 어디쯤에 있다.

2013년 5월 28일 오후 8시 32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제일 오래된 향나무. 그는 여기서 800년을 보냈다. 요즘 내겐 8일이, 8시간이 너무 길다. 귓가의 이어폰에선 기억의습작 이 흘러나온다. 나는 나와 다른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향나무를 바라보며 나와도 나무와도 다른 시간을 흘려보내고있는 도시의 맥박에 마음으로 귀기울인다. 사람들은 술을 찾지만 사실 술 없이도 쉽게 밤에 취해 비틀거릴 수 있다. 오늘밤 내가 그렇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김장훈의 나와같다면 을 지나고 지금은 이문세의 굿바이다. 앞으로 여기서 15일이다. 잘 가고 있는 걸까.

2013년 5월 20일 오후 7시 35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하리꼬미 한 달이 지났다. 엊그제 나는 정든 영등포를 떠났다. 하필 휴일이라 근무하는 형사들이 많지 않았다. 하루는 짧았다. 엊그제까지도 아니, 떠나는 당일 구로서 형사과장, 형사 3팀장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차마 얘길 못했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낯설고 힘겹기만 했던 곳곳마다 어느새 나와 그들 사이의 잔정이 스며든 모양이었다. 결국 뒤숭숭한 마음으로 이 경찰서 저 경찰서를 떠돌다 선배의 호출을 받았다. 라즈베리 무스 케익을 먹으며 선배는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얘길 들려줬다. 립밤 여덟 개, 차 여덟 상자에 일일이 쪽지를 적었다. 이 사람들 중 그 누구라도 나를 특별하게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사람대 사람으로. 지나가다 인사하러 경찰서엘 들르는 그런 날을 꿈꾼다. 그때까지 그들도 나도 치열하게, 건강하게, 기쁘게 각자 위치에서 일할 수 있기를. 매정해도 될 사람들이 다정한 가운데, 다정해야 할 사람들은 무정하기까지 한 요즘이다. 헤어짐과 오해가 뒤엉켜 힘들었던 한주는 끝내 이 문장을 남긴다.

2013년 4월 27일 오후 8시 16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첫 주가 끝났다. 매일 두시간만 자고도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간단 것을 알았다. 때론 먹는 것보다 씻는 게 더 힘이 난단 것을 알았다.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고 삶에 져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단 것을 알았다. 보고시간이 닥쳐올 때 사망사고가 차라리 반가워지는 나의 잔인함을 알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단 것도 새삼 알았다. 영등포, 강서, 구로, 양천. 각 경찰서들 주변에 혼자 사먹을 만한 건 뭐 있는지, 와이파이 되는 카페는 어디 있는지, 제일 가까운 사우나는 어딘지, 무슨서 형사 몇팀 강력 몇팀이 친절한지, 어디 과장 계장이 우호적인지. 뭐 이런 것들을 체득하고 있다. 아직 모르겠는 건, 대화와 취재의 경계는 어디쯤인지. 물고 늘어질때와 치고 빠질 때는 언제인지. 매달리면 되는 일과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은 뭔지. 이런 것들.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들. 내가 얼마만큼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재미는 있지만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이 시간들을 통해 깎이고, 다듬어지고, 매끄러워지고, 또 단단해지길. 아............ 일곱시간 후면 다시 구로서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토요일이 너무 짧다. 또 한 주의 시작이다.

2013년 4월 6일 오전 2시 56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 내가 고민끝에 얼버무린 말들에 대한 당신의 그 평가가 더 가볍다. 가볍다는 단어는 그런 뜻이다. 이는 지나간 화두가 되어 나는 아마 다신 말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끝내 모르게 될 테지만.

2013년 3월 28일 오후 8시 5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봄노랠 두고 사람들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계절에 대해, 아니 어쩌면 사라져가는 계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언젠간 이 노래가 유물이 돼 버린 계절의 풍경과 감성을 대변할 거라고. 이게 바로 낭만이 흐르는 새로운 방식이다. 계절의 부재가운데 나는 나름의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사실 이 날들을 온전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도 모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날그날 밀려드는 일들에 간신히 대처하고 꾸역꾸역 새롭게 뭔갈 배운다. 심지어 스스로에 대한 평가조차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그렇게 휩쓸려다니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하루하루는 분명 내 안의 어디엔가 차곡차곡 쌓여야만하는, 어떤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난 그걸 필사적으로 그러모아야하는데 그러고 있는질 알 수가 없다. 한심하대도 어쩔수 없다. 이모든 상황들 때문일까. 밀려드는 파도. 혼란과 절제에 대해 얘기했다. 철저한 타인이다. 놀라진 않았다. 모든 관계는 일정한 무게를 나눠 짊어지기 마련이니까. 표현의 양태는 다를지라도 같은 마음을 각자 앓고 있단 것이다. 그마음을 확인하는 일, 앓는 소릴 듣게 되는 일은 두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요즘 그 과정을 걷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쉽게 지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13년 3월 10일 오후 1시 52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교육이 끝났다. 내일부턴 실전이다. 좋은 때는 다 갔단 얘기다. 대개 내키진 않을 술자리와 허다한 인격모독들, 재능에 대한 의심, 선택에 대한 후회. 이제 8월 1일까지 남은 건 아마도 그런 시련들일 터. 달리 말하면 전사로 거듭나기 위한 연단의 시간이 다가온단 소리다. 올 한해를 난 획기적인 일신상의 변화를 거듭하며 맞이했다. 다가오는 시간들 사이로 내 삶의 추는 또 얼마나 단단해질까. 사방이 봄이 오는 소리로 가득하다. 기다려진다.

2013년 2월 25일 오전 4시 32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너무 오래, 제대로 된 글 한편을 완성하지 않았던 탓일까. 별 것 아닌 글인데도 한문장 한문장이 더딘 속도로 채워졌다. 왜 교육이란 걸 받으면서 점점 더 멍청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건진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오히려 합격 이후에, 지나치게 조금 읽고, 조금 생각하고, 거의 쓰지 않았다. 교육을 받으며 늘 듣는 건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고하고, 쓰고 또 쓰란 조언들이었는데. '적응'이란 걸 할 동안 다른 걸 병행 할 수 없었던 건 나만의 문제인지. 모두가 겪는 현상인지. 모르겠다. 이제 아홉 시간 후면, 나는 '학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게 된다. 아니다. '학생'이라는 인생 최고의 호사, 미완성의 면죄부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수 년간 이 순간을 상상해 왔건만, 막상 나는 지금의 기분을 형용하기 힘들다.  스물 다섯의 나, 그토록 내가 원하던 그 자리에 서 있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 자리에 있어서 더 그런 걸까. 두근거린다.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두근거린다. 두어 장 남짓한 보고서를 여태 다 채우지 못하고도, 엄마의 알람이 울리는 이 시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2013년 2월 21일 오후 10시 48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첫 한 달. 그 시간들이 나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일들이 펼쳐졌다. 전에 결코 해 보지 못한 일들,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일들도 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자라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와 같고도 또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자라나는 관계들 틈으로 마음이 이리저리 일렁거렸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사람. 머리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싶다. 벅차도록. 올해, 그 어 때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