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6일 오후 5시 5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어찌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일진기자실에 출입을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고. 여유가 없었다.

올 여름 사건의 매 순간마다 내가 있었다.  아시아나 사고, 용인 토막살인, 노량진 수몰사고, 태안 캠프, 방화대교 붕괴 등. 그 거칠고 아픈 경험들을 통해 나는 과연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살인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책임자들의 뻔뻔한 뒷모습을 지켜보며 바다에서 찬 시체로 돌아온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지금 내 생활을 곱씹어보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수습때가 나았다.
시키는 것만 하면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뿐더러 우리 선배들은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것은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책임'이란 걸 스스로 지게 되고 펜을 휘두르게 되면서 여유도 정신도 점점 없어진다.
자신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

그만두고싶다고 징징대다가도 그만두면 딱히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어 망설여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나 싶다가도 '나아질 건 없다, 타이밍을 놓쳐서 그만두지 못한다'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지나면 이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될까.
시간이 흐르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볼 때면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때 하는 생각이 '그때 그만뒀어야 하는데'가 아니라 '그때 그만두지 않길 잘했어'이길 바란다.




g.o.d. 의 길과 김윤아의 going home. 내 기분은 그 어디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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