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그냥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p.51-52
 ...창의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실주의자 볼테르가 한 말이에요."
"너도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예요."

p.85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p.378 
"그렇지만 참 이상해." 에리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쓰쿠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p.386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그것이 쓰쿠루가 핀란드의 호숫가에서 에리와 헤어질 때 했어야 할, 그러나 그때 말하지 못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디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p.437 





어떤 형태로든 관계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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