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春光乍洩, Happy Together, 1997 드라마 홍콩 97분 2009 .03.27 재개봉, 1998 .08.22 개봉 왕가위 장국영 (보영), 양조위 (아휘), 장첸 (장)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랑 지낸 날들을 후회해?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여기 녹음해요. 슬픔을 땅 끝에 묻어줄게요. 때로는 귀가 눈보다 사람을 더 잘 봐요. 예를 들어 누가 행복을 가장해도 그가 내는 소리는 숨기지 못해요. 세심히 들으면 다 알 수 있어요. 사실 그날 일들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이젠 나랑 같이 있는 것이 지겹다는 말을 했다는 것 외에는. 차라리 지금 헤어지고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나면 그때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난 늘 그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사람들은 고독해지면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껴안았을 때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 외엔 아무 것도 안 들렸다. 그도 들었을까. 이과수 폭포 아래 도착하니 보영이 생각났다. 슬펐다. 폭포 아래 둘이 있는 장면만 줄곧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자유로운 이유를 알았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 원제는 춘광사설(春光乍洩). 구름 사이로 잠시 비치는 봄 햇살 이라는 뜻이란다. 일본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 영화가 점점 좋아지는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됐을때 조금씩 꺼내보려고 결심했었다. 해피투게더 역시 그랬다. 어릴 때 조금 보다가 그만둔 적은 있었는데, 당시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사랑을 모르는 꼬맹이였기 때문이 아니
별 시대의 아움 이제니 어제 익힌 불안의 자세를 복습하며 한 시절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막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완벽한 문장.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언어의 심연. 시대에 대한 그 모든 정의는 버린 지 오래. 내 시대는 내가 이름 붙이겠다. 더듬거리는 중얼거림으로, 더듬거리는 중얼거림으로. 여전히 귓가엔 둥둥 북소리. 내 심장이 멀리서 뛰는 것만 같다. 세계는 무의미하거나 부조리한 것이 아니다. 그냥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것. 의심을 하려거든 너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너의 귀를 씻어라. 언제나 우린 멀리 더 멀리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 극동의 자퐁으로 가자, 극동의 자퐁으로. 그러나 그대여, 누군가에겐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이 극동이다. 일곱 계단의 정신세계. 식어버린 수요일의 요리를 먹고 얼굴을 가릴 망토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날들. 차라리 녹아내리기를 바라던 유약한 심정으로. 시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가 가진 단어를 검열하는 오래된 버릇. 무한반복되는 기하학적 무늬의 영혼을 걸치고 혼자만의 아주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어갈듯한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어제의 기억에 단호히 마침표를 찍는 사람의 마지막 타들어가는 담배가 되고 싶다. 타닥 타닥 타닥. 질 좋은 담배는 이런 식의 싸구려 발성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싸구려 발상법에 익숙하다. 구토라도 하듯 목구멍에서 말들이 쏟아져내린다.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나비가 날고 있다. 너무 많은 바퀴 단 것들이 우루루 지나간다. 문득 비둘기 한 마리가 욕설을 퍼부으며 내 발치에 내려앉는다. 구구구 구구구. 구구단을 외우고 좀 울어도 좋을 날씨. 한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오래전 잃어버린 문장 하나가 입속에서 맴돈다. 이 거리에서 몇번 굴러야 할지 몰라 두 번만 굴렀다. 앞으로 두 번, 뒤로 두 번, 후회 반성 고쳐 말하기는 오래된 나의 지병. 얼룩이 남는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다. 한 시절을 훑느라 지문이 다 닳았다. 먼지 같은 사람과 먼지 같은
세상 끝 등대 1 박준 내가 연안을 좋아하는 것은 오래 품고 있는 속마음을 나에게조차 내어주지 않는 일과 비슷하다 비켜가면서 흘러들어오고 숨으면서 뜨여오던 그날 아침 손끝으로 먼 바다를 짚어가며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섬들의 이름을 말해주던 당신이 결국 너머를 너머로 만들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시인선 032 = 오래 품고 있는 속마음 비켜가면서 흘러들어오고 숨으면서 뜨여오더니 너머가 되어버린 것
어찌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정식으로 발령을 받고 일진기자실에 출입을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고. 여유가 없었다. 올 여름 사건의 매 순간마다 내가 있었다. 아시아나 사고, 용인 토막살인, 노량진 수몰사고, 태안 캠프, 방화대교 붕괴 등. 그 거칠고 아픈 경험들을 통해 나는 과연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살인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책임자들의 뻔뻔한 뒷모습을 지켜보며 바다에서 찬 시체로 돌아온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지금 내 생활을 곱씹어보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수습때가 나았다. 시키는 것만 하면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뿐더러 우리 선배들은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것은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책임'이란 걸 스스로 지게 되고 펜을 휘두르게 되면서 여유도 정신도 점점 없어진다. 자신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 그만두고싶다고 징징대다가도 그만두면 딱히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어 망설여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나 싶다가도 '나아질 건 없다, 타이밍을 놓쳐서 그만두지 못한다'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지나면 이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될까. 시간이 흐르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볼 때면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때 하는 생각이 '그때 그만뒀어야 하는데'가 아니라 '그때 그만두지 않길 잘했어'이길 바란다. g.o.d. 의 길과 김윤아의 going home. 내 기분은 그 어디쯤에 있다.
▲경향: 박근혜 정권이 심판 당했다...더민주 '제1당' ▲국민: 국민, 정권을 심판하다 ▲동아: 성난 민심 '선거의 여왕'을 심판했다 ▲문화: '民心혁명'...與, 헌정사상 초유 '2黨' 전락 ▲서울: 새누리 참패...국민은 與小野大 택했다 ▲세계: 심판 당한 집권당...여소야대 정국 재편 ▲조선: 새누리 참패, 더민주 환호, 국민의당 돌풍 ▲중앙: 새누리당을 심판했다 ▲한겨레: 이토록 무서운 민심...'여소야대'로 바꿨다 ▲한국: 與 참패...국민은 무서웠다 = 제목은 국민 동아가 임팩트 있고 간결해서 좋았다. 경향과 한겨레는 길어서 무거운 느낌이다. 조선은 찰라리 참패, 환호, 돌풍 이렇게 단어로만 사진 위에 박았어도 좋을 것 같다. 헤드제목 단어 아래 조그맣게 당 이름을 넣던지. 사진은 조선 중앙 한국이 좋았다. 클로즈업샷 3개 딱 박아주는게 군더더기 없어서. 나머지는 좀 번잡한 느낌이다. 문화는 왜 굳이 무대의 단독 무대를 만들었는지... 경향이 정말 전날 내보낸 '티저'의 하나를 따오게 되려나 궁금했는데 일치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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